[나] 난 여기서 추가 질문을 던지고 싶어. 날카로운 것과 몸이 부딪혀서 몸의 의식(신식)이 일어나. 그리고 아픔도 일어나. 여기까진 잘 알겠어. 그럼 바로 이 지점에서 의식(마노-윈냐나)의 역할은 뭐야? 의식이 있는 경우와 없는 경우 둘 다 설명해줘봐.
[제미나이]
의식(意識)의 역할: 감각과 경험 사이의 비밀
우리가 ‘아프다’고 말하는 하나의 경험은, 사실 마음속에서 일어나는 초고속 연쇄 반응의 결과물입니다. 이 과정을 1단계(감각의 문)와 2단계(마음의 문)로 나누어 정밀하게 살펴보겠습니다.
1단계: 신식(身識, kāya-viññāṇa)의 발생 (순수한 감각의 차원)
날카로운 것(대상)과 몸(감각 기관)이 부딪히는 그 1찰나에, 신식(身識, kāya-viññāṇa)이 번개처럼 일어납니다. 이것은 ‘싫다’거나 ‘아프다’는 의미나 해석이 전혀 없는, 순수한 ‘물리적 충격에 대한 앎’ 그 자체입니다.
바로 이어서, [몸 + 대상 + 신식] 이 세 가지가 만나는 접촉(觸, phassa)이 일어납니다. 그리고 이 ‘접촉’을 직접적인 조건으로 하여, 두 가지 원초적인 마음부수가 함께 발생합니다.
- 1차 느낌(受, vedanā): ‘싫다’는 정신적 괴로움이 아니라, 순수한 ‘신체적 고통(kāyika-dukkha-vedanā)’ 그 자체입니다.
- 1차 인식(想, saññā): “이것은 ‘칼’이다”라는 의미 해석이 아니라, “날카로움, 차가움, 닿음”과 같이, 주어진 감각 데이터의 물리적 속성을 그저 ‘표시(marking)’하는 원초적인 인식입니다.
2단계: 의식(意識, mano-viññāṇa)의 발생 (경험이 구성되는 차원)
1단계에서 일어난 모든 경험(신식, 1차 느낌, 1차 인식 등) 전체가 하나의 정신적 데이터 덩어리, 즉 법(法, dhamma)이 되어 즉시 마음의 문(意門, mano-dvāra)으로 넘어옵니다. (물론 이 사건이 진행되는 동안, 서로 다른 신식들이 계속해서 일어나고 사라집니다.)
그러면 의식(意識, mano-viññāṇa)이 그 ‘법’이라는 데이터를 대상으로 하여 “안다”는 자신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의식은 스스로 해석하거나 반응하지 않습니다. 다만, 다른 모든 정신 활동이 펼쳐질 수 있는 ‘무대’를 환하게 밝힐 뿐입니다.
그 무대가 밝혀지는 바로 그 순간, 수많은 조력자(마음부수, cetasika)들이 동시에 등장하여 각자의 역할을 수행합니다.
- 인식(想, saññā): “칼에 베인 것 같다”, “지난번에도 이런 적이 있었지” 와 같이, 과거의 기억을 총동원하여 현재 상황의 의미를 해석하고 개념화합니다.
- 느낌(受, vedanā): 1단계의 신체적 고통에 대해, “이 느낌이 싫다! 끔찍하다!”라고 반응하는 정신적 불쾌감(domanassa)을 일으킵니다.
- 의도(思, cetanā): “손을 치워야겠다”, “소리를 질러야겠다” 와 같이 실제 행동을 조직하고 마음을 이끄는 의지적 반응을 만들어냅니다.
- 성냄(瞋, dosa): 그 불쾌한 경험에 대해 혐오감과 저항감을 일으킵니다.
즉, 의식은 이 모든 조력자들이 우리가 ‘경험’이라고 부르는 한 편의 연극을 만들어내는 장을 제공해줍니다. 우리가 “아프다”고 인지하고 괴로워하는 것은, 1단계의 순수한 감각 때문이 아니라, 2단계에서 의식이라는 무대 위에서 이 모든 조력자들이 한꺼번에 만들어낸 정신적 반응의 총합입니다.
의식이 없는 경우 (이론적/특수한 경우)
신체에 물리적 접촉이 일어나 1단계의 신식이 발생했더라도, 그 신호를 이어받아 2단계의 무대를 열어줄 의식이 다른 강력한 대상(예: 영화 감상, 깊은 사유)에 완전히 몰두해 있다면, 1단계의 경험은 아무런 의미도, 정신적 반응도 일으키지 못한 채 그대로 소멸해 버립니다. 이것이 바로 ‘보고도 알지 못하는’ 현상의 원리입니다.
깊은 선정(禪定) 상태에서는 다섯 감각의 문이 일시적으로 닫히므로, 이때는 신식 자체가 일어나지 않거나, 일어나더라도 의식의 개입이 전혀 없으므로 어떠한 외부 감각도 경험되지 않습니다.
결론
신식(身識)은 그저 ‘사건 발생!’이라는 신호를 보내는 역할만 합니다. 그 신호를 받아 “이것은 고통이다”라고 규정하고, 괴로워하며, 반응하는 것은 전적으로 의식(意識, mano-viññāṇa)과 그와 함께하는 마음부수들의 몫입니다.
이 둘의 역할을 명확히 구분해서 아는 것은 수행에 있어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날카로운 칼’ 자체가 고통이라고 착각하지만, 진짜 괴로움의 대부분은 그것을 받아 ‘해석하고 반응하는’ 우리의 마음 안에서 만들어지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통찰 할 때, 우리는 감각적 접촉과 그로 인한 괴로움의 연쇄 고리를 끊어낼 수 있는 열쇠를 쥐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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