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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처님이 정의하신 ‘바른 사띠’

“베이지 톤 배경 위, 네 개의 은은한 원(몸·느낌·마음·법) 사이에서 따뜻한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좌선하는 수행자”

그동안 일상에서 탐진치를 지켜보는 통찰 수행을 해왔다. 다른 말로 하면 사띠 수행이다. 별생각 없이 하고 있었는데, 최근 식(識)과 명색(名色)을 정리하면서 사띠에 대해 모호하게 알고 있었던 부분, 무시했거나 모르고 있었던 부분을 알게 됐다. 이번 기회에 나의 수행을 위해, 그리고 현재 내 교학 수준이 허락하는 범위에서 이 주제를 정리해보려고 한다.


1. 바른 사띠 (sammā-sati) : 일곱 번째 길

팔리어로 sammā-sati, 한역으로 정념(正念)인 바른 사띠는 팔정도의 일곱 번째 항목이다. 팔정도는 도성제(道聖諦)의 내용으로서 해탈·열반으로 향하는 필수 관문이자 불교 수행의 스탠다드이다. (나의 스승님께서는 “팔정도가 곧 아라한이고, 아라한이 곧 팔정도다.”라고도 말씀하셨다.)


2. 바른 사띠의 대상 : 네 가지 장소(사념처)

그렇다면 ‘바른 사띠’는 무엇을 대상으로 하는가? 사리뿟따 존자가 남긴 법문이 있다.

바른 사띠에 대한 사리뿟따 존자의 정의

“벗들이여, 무엇이 바른 알아차림입니까?
수행자가 세상에 대한 탐욕과 근심을 버리고, 근면하고, 명료하게 알아차리며, 마음챙기면서,
몸에서 몸을 관찰하며 머무는 것입니다.
느낌에서 느낌을 관찰하며 머무는 것입니다.
마음에서 마음을 관찰하며 머무는 것입니다.
법에서 법을 관찰하며 머무는 것입니다.

벗들이여, 이를 일러 바른 알아차림이라 합니다.”

— 「진리 분석 경」(MN 141)

바른 사띠는 곧 사념처 수행이다. 이 가르침은 중요한 사실을 알려준다. 사띠는 아무데나 두는 것이 아니라, 대상이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3. 왜 이 네 가지 대상인가?

그렇다면 왜 부처님께서는 오직 이 네 가지(몸, 느낌, 마음, 법)만을 ‘바른 사띠’의 대상으로 지정하셨을까?
왜냐하면 몸, 느낌, 마음, 법 이 네 가지 영역이 바로 오온(五蘊)으로 구성된 ‘나’라는 경험 세계를 관찰할 수 있는 유일한 수행처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나’라고 착각하고 집착하는 오온의 활동 무대가 바로 이 네 곳이며, 따라서 괴로움이 발생하는 현장도 바로 여기다.
부처님께서는 괴로움이 발생하는 곳을 직접 관찰하여 그 모든 현상들이 단지 무상하고(anicca), 괴롭고(dukkha), 실체 없는(anattā) 것임을 꿰뚫어 볼 때 비로소 모든 번뇌에서 벗어날 수 있다고 하셨다. 사념처는 괴로움의 소멸로 가는 가장 직접적인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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