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마로 풀다

화가 안 풀리는 이유 — 당신이 계속 들고 있기 때문

화가 안 풀리는 이유 — 당신이 계속 들고 있기 때문

며칠이고 마음에 남는 장면

그 말이 며칠째 머릿속을 떠나지 않는다. 대화는 이미 끝났고, 그 사람은 앞에 없는데도. 샤워를 하다가, 길을 걷다가, 잠자리에 누웠다가 불쑥 그 장면이 재생된다.

그때 이렇게 받아쳤어야 했는데. 이렇게 말해줬어야 알아들었을 텐데. 억울함과 분함에 심장이 다시 쿵쾅거린다. 시뮬레이션은 점점 정교해지고, 분노는 점점 선명해진다. 시간이 지나면 희미해져야 할 텐데, 어째서 이 감정은 더 또렷해지는 걸까. 이 감정을 어떻게 다뤄야 할까?


담마로 비춰보면

부처님은 이 상태를 도사(dosa, 성냄)라고 부르셨다. 그런데 도사의 작동 방식을 들여다보면 한 가지 사실이 드러난다. 도사는 저절로 타오르는 불이 아니라, 우리가 계속 장작을 던져 넣어야 유지되는 불이라는 것. 경전에 이런 장면이 있다. 어떤 바라문이 붓다에게 거친 말을 쏟아냈다. 붓다는 조용히 물었다.

“당신 집에 손님이 왔을 때, 음식을 대접하는가?” “그렇습니다.” “그 손님이 음식을 받지 않으면, 그 음식은 누구의 것이 되는가?” “다시 저의 것이 되겠지요.” “당신이 오늘 내게 건넨 것도 그와 같다. 나는 받지 않겠다.”

— SN 7.2(7번째 상윳따의 2번째 경) : 악꼬사나 경

우타가와 히로시게 풍 판화 — 음식을 건네는 바라문 앞에서 조용히 앉아 있는 스님. 분노의 선물을 받지 않는 장면.
에도 시대 우키요에 풍경화가 우타가와 히로시게 풍으로 그려본 장면.

상대방의 분노와 모욕은 그들이 건네는 선물이다. 우리는 그 선물을 기어코 받아서, 며칠이고 뜯어보며 감상한다. 머릿속으로 그 말을 되새기고, 그 장면에 의미를 부여하고, 복수 시나리오를 짠다. 이 모든 행위가 선물을 받아드는 행위다.

화가 안 풀리는 건 상대가 나쁜 말을 해서만은 아니다. 내가 그 말을 계속 들고 있기 때문이다.


욕설과 모욕을 붙들고 있지 말것

일어난 화를 곧바로 없애는 건 어렵다. 하지만 내가 지금 선물을 들고 있다는 걸 알아차리는 건 연습할 수 있다. 그 생각이 다시 떠오를 때, 내용에 빠져들지 말고 딱 한 발 물러서서 봐라. ‘아, 내 마음이 지금 이걸 또 붙들었구나.’ 그 알아차림 자체가 손에 힘이 빠지는 순간이다.

그리고 마음속으로 조용히 말해볼 수 있다. 이건 당신의 것이다. 나는 받지 않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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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물을 돌려주는 건 상대를 위한 용서가 아니다. 나를 위한 선택이다.

에카얀 겐
에카얀 겐
재가 수행자. 일상과 담마 사이를 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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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카얀 겐
에카얀 겐
재가 수행자. 일상과 담마 사이를 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