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 중에 죽으면 좋은 곳에 간다는 믿음
전쟁에서 나라를 위해, 동료를 위해, 정의를 위해 싸우다 죽은 사람은 좋은 곳에 간다는 믿음이 있다. 북유럽 신화의 발할라, 이슬람의 순교자(샤히드) 천국 등. 이러한 믿음은 시대와 문화를 가로질러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 고귀한 명분을 위한 죽음에는 그에 걸맞은 사후를 보상으로 받아야 한다는 정서다. 부처님 시대의 인도에도 같은 믿음이 있었고 이와 관련된 대화가 「상윳따 니까야」 「요다지와 경」(SN42.3)에 전한다.
전사가 묻다
요다지와(Yodhājīva)1는 마을 수장이었고, 전사 가문 출신이었다. 그는 붓다를 찾아가 집안에 대대로 내려온 가르침에 대해 물었다.
“전사가 전쟁터에서 열심히 싸우다 쓰러지면, 죽어서 ‘전쟁에서 죽은 신들의 무리’에 태어난다고 들었습니다.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붓다는 대답하지 않았다.
“그만, 요다지와여. 그것은 내려놓으시오. 묻지 마시오.”
두 번째로 물었을 때도 같은 답이 돌아왔다. 세 번째가 되어서야 붓다가 입을 열었다.
“당신이 세 번이나 거듭 묻는 바람에 대답하지 않을 수가 없게 됐소.”
붓다의 답
붓다는 말했다.
전투 중인 전사의 마음은 이미 한 방향으로 굳어 있다. “저들이 쓰러지기를, 죽기를, 전멸하기를, 사라지기를.” 그 마음 상태로 싸우다 몸이 무너져 죽으면, 전쟁 중 죽은 이들이 간다는 지옥에 태어난다.
더 나아가, 전장에서 죽으면 신들의 무리에 난다는 믿음은 삿된 견해(邪見)다. 삿된 견해를 가진 사람이 몸이 무너져 죽으면 지옥 또는 축생에서 재생한다.
요다지와가 울었다
요다지와는 그 자리에서 눈물을 터뜨렸다.
붓다가 말했다. “그래서 내가 처음부터 그 질문을 내려놓으라고 했던 것이오.”
요다지와가 답했다.
“부처님 당신의 말씀 때문에 우는 것이 아닙니다. 오랫동안 전사 가문의 그 가르침이 나를 속이고, 기만하고, 농락해왔다는 것이 억울해서 웁니다.”
그는 그 자리에서 귀의했다.

의도가 가져오는 무서운 결과
보통 사람들은 명분에 죽고 산다. 싸우다 죽었다면 — 그 죽음은 다른 죽음과 달리 취급받아야 한다고 느낀다. 부처님께서는 그보다는 ‘저 자를 죽이고 싶다는’ 의도를 보셨다. 물론 그러한 죽음이 사회적으로 숭고하지 않다는 말도 아니다. 다만 진리의 세계에서는 다르다.
출처
SN 42:3 원문 — [suttacentral.net/sn42.3](https://suttacentral.net/sn42.3)
- 요다지와(Yodhājīva)는 ‘전사로 사는 자’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마을 수장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