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띠를 정의하는 두 방향

주류 불교 전통에서는 ‘마음챙김(사띠)’을 대부분 “판단 없이 지금 이 순간을 있는 그대로 관찰하는 것”이라고 설명한다. 그런데 타니사로 스님1은 사띠(sati)를 “있는 그대로의 관찰(bare attention)”이 아니라 기억하는 능력, 즉 과거에 배운 것을 지금 이 순간에 불러와 쓸 줄 아는 능동적 기억(active memory)이라고 본다.

스님은 The Karma of Mindfulness에서 이 점을 분명히 한다. 사띠를 “bare attention”이나 “full awareness”로 설명하는 사람들이 있지만, 붓다는 그런 사람들 가운데 한 명이 아니었다고 말한다. 붓다가 쓴 사띠는 마음에 무언가를 붙잡아 두는 힘, 곧 과거에 익힌 교훈을 현재에 적용하기 위해 놓치지 않고 기억하는 능력이라고 한다.

실제로 「나가라 경(성곽 경)」(AN 7:63)에서 부처님은 사띠를 문지기에 비유하셨다.

“마치 왕의 변방 요새에 문지기가 있어 — 지혜롭고 유능하며 총명하여 — 알지 못하는 자는 들이지 않고 아는 자만 들이듯이… 이와 같이 성스러운 제자는 마음챙김을 갖추고, 탁월한 마음챙김의 능숙함을 갖추어, 오래전에 행하고 말한 것까지도 기억하고 떠올릴 수 있다.”

— 『앙굿따라 니까야』 「나가라 경」(AN 7:63)

사띠는 마음의 문지기

‘관찰’이 아니라 ‘기억’

사띠를 이렇게 정의하면 실전 수행의 방향을 상당히 바꾼다. “판단 없이 관찰하라”는 지침은 수행자를 수동적 위치에 놓는다. 경험이 흘러가는 것을 그저 지켜보는 사람이 되는 셈이다. 반면 “과거에서 배운 것을 기억해서 지금 잘 쓰라”는 지침은 수행자를 능동적 위치에 놓는다. 지금 이 순간을 직접 빚어내는 사람이 된다.

타니사로 스님은 팔정도의 한 항목인 바른 마음챙김(正念, sammā-sati)이 혼자 작동하지 않는다고 강조한다. 세 가지가 함께 움직여야 한다. 첫째, 사띠 — 과거에 배운 것을 놓치지 않고 기억하는 힘. 둘째, 삼빠잔냐(sampajañña) — 지금 내가 무엇을 하고 있는지, 그 결과가 어떤지 알아차리는 힘. 셋째, 아따빠(ātappa) — 해로운 것은 버리고 이로운 것은 키우려는 적극적 의지, 곧 정진. 이 셋이 합쳐질 때 비로소 바른 마음챙김이 되고, 그것이 다시 바른 집중(正定, sammā-samādhi)을 떠받친다.

사띠와 관련해서 타니사로 스님의 독특한 관점이 있다. 마음챙김은 의도적 행위, 곧 깜마(kamma)라는 것이다. 우리는 매 순간 업을 빚어내고 있고, 스님에 따르면 마음챙김이란 그 빚어내는 행위를 더 숙련되게 하기 위해 과거의 교훈을 불러오는 일이다. 스님은 음식 비유를 쓴다. 과거 깜마(현재 경험의 원인)는 재료에 해당하고, 현재 깜마(현재 경험에 대한 의도적 행위)는 그 재료로 음식을 만드는 행위에 해당한다. 재료가 좋든 나쁘든, 요리를 얼마나 잘 하느냐가 지금 이 순간의 경험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경험의 이어짐이 곧 삶이다) 마음챙김은 바로 그 요리 솜씨의 핵심이다. 탁월한 비유다.

일상에 적용하면 이런 식이다. 퇴근 후 소파에 누워서 SNS를 끝없이 스크롤하고 있다고 하자. 주류 마음챙김 방식이라면 “지금 스크롤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리세요. 판단하지 마세요”가 된다. 타니사로 스님의 방식이라면 과거에 이렇게 했을 때 어떤 결과가 왔는지를 기억한다. 두 시간 뒤에 후회했고, 잠을 망쳤고, 다음 날 몸이 무거웠다는 것을 기억하고 분명하게 안다. 그리고 그 기억을 바탕으로 지금 행동을 바꾼다. 이것이 현재의 깜마다.

이 관점이 옳은지, 혹은 주류 마음챙김 해석과 어디까지 양립할 수 있는지는 또 다른 논의의 영역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점이 있다. 타니사로 스님의 해석은 사띠를 훨씬 실용적이고 능동적인 기술로 만든다. 관찰만 하고 있으면 되는 것이 아니라, 배운 것을 기억하고, 알아차리고, 열심히 고쳐 나가게 한다. 그때부터 사띠는 멍하니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매 순간의 경험을 더 나은 방향으로 빚어내는 장인의 기억이 된다.


출처

  • Ṭhānissaro Bhikkhu, The Karma of Mindfulness: The Buddha’s Teachings on Sati & Kamma (Metta Forest Monastery, 2015) — dhammatalks.org
  • AN 7:63 (Nagara Sutta, 성곽 경) — suttacentral.net/an7.63
  1. 아잔 타니사로(Ajahn Ṭhānissaro)는 미국 출신의 비구로, 태국 숲 전통(담마윳 종단)에서 수계했다. 아잔 푸앙 조띠꼬의 직계 제자이며, 스승의 계보는 아잔 문까지 올라간다. 현재 미국 캘리포니아 메따 숲 수도원(Metta Forest Monastery)의 주지다. 태국 숲 전통에서는 10년 이상 수행한 비구를 ‘아잔(Ajahn, 스승)’이라 부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