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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례한 말은 왜 이토록 오래 남을까? (수정) 새 글

고통살경 (상윳따 니까야 36.6) · 꿀덩이경 (맛지마 니까야 18)

무례한 말에 대응하는 방법

출장 중에 같이 나간 직원이 다른 사람들 앞에서 나를 소개하며 말했다. “쟤는 제가 데리고 다니는 애예요.” 그 말은 그 자리에서 끝났지만, 내 마음에서는 끝나지 않았다. 숙소에 돌아온 뒤에도 장면이 계속 떠올랐고, 왜 그런 말을 했는지, 내가 왜 그런 취급을 받아야 하는지, 다음에는 뭐라고 받아쳐야 하는지 같은 생각이 오래 이어졌다.


어떻게 처리할까

전제해야 할 것은 불교는 언제나 안을 본다는 것이다. 무슨 말이냐면, 무례한 말을 한 대상을 혼내줘서 다시는 그런 말을 못하도록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내면을 다루는 방법을 가르친다. 먼저 괴로운 느낌에 대한 부처님의 말씀을 보자.

부처님께서는 평범한 사람과 잘 배운 성자의 제자가 괴로운 느낌을 어떻게 다르게 겪는지 설명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다.

(잘 배운 성자는) "괴로운 느낌을 느끼더라도 마음으로까지 괴로워하지는 않는다"(SN 36.6)

무례한 말로 인해 괴로운 느낌이 올라올 때 해야 할 일은 그 말의 옳고 그름을 계속 따지는 것이 아니다. “아, 지금 또 이 장면을 재생하고 있구나” 하고 알아차리고, 바로 지금 몸에서 일어난 답답함, 열감, 수축 같은 괴로운 느낌으로 돌아오는 것이다. 그러면 기억과 괴로움을 나와 동일시하지 않게 되고, 잠깐이라도 거기서 떨어져 나올 수 있다. 반대로 생각의 내용 속으로 계속 들어가면 괴로움은 한 겹 더 붙는다. 부처님이 말씀하신 두 번째 화살도 바로 이런 추가 괴로움(요즘말로 하면 2차 가해)을 가리킨다.


마음은 괴로움을 어떻게 불려 갈까

부처님께서는 마음이 괴로움을 붙잡아 불려 가는 과정을 이렇게 설명하셨다.

"느낀 것은 지각되고, 지각한 것은 생각되고, 생각한 것은 증식된다."(MN 18)

타니사로 스님은 MN 18 해설서에서 증식(빠빤짜, papañca)을 단지 생각이 많아지는 것이 아니라, “자기 자신을 세우고 거기서 갈등을 키우는 것“으로 풀어낸다.

여기서 지각(산냐, saññā)은 그 경험에 표지를 붙여 알아보는 것이고, 생각(위딱까, vitakka)은 그 표지를 붙잡고 한 번 생각이 붙는 단계다. (내용을 쫓아가서 빠져든다는 의미.) 증식(빠빤짜, papañca)은 그다음이다. 같은 장면을 다시 재생하고, 해석하고, 판단하고, 반격을 연습하면서 괴로움을 계속 불려 가는 것이다. 문제는 기억이 떠오르는 데서 끝나지 않고, 그 기억 위에 이야기를 계속 덧붙인다는 데 있다.

이런 상황에서는 주로 성냄(dosa, 화나거나 슬픈 감정)이 드러난다. 그리고 “나를 어떻게 보고 저런 말을 하지” 하는 마음이 붙을 때는 만(mana, 비교에서 오는 우월감과 열등감)도 함께 작동한다. 그러나 그 바닥에는 괴로움을 곧바로 ‘내 상처’로 붙드는 무명(모하, moha =치심)이 있다. 만도 결국 이 무명(치심) 위에서 힘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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